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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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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민이 꼭 지키겠습니다 ㅣ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100년 기념식

2026.01.08

[화면 자막]

2026. 01. 07.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방문

 

[음성 자막]

지금부터 이재명 대통령님 내외분 김구 선생님께 참배를 하시겠습니다.

지시와 이쪽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하론에 손을 떼시고 마치겠습니다.

 

김구 선생님께 경례

 

바로

 

일동

 

묵례

 

바로

 

이것으로 참배를 마치겠습니다.

 

지금 유적지는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이거는 언제 만든거에요?

 

[음성 자막]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당선되었고 선생님이 거주지였던 이곳은 1932년까지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을 논의하던 회의실입니다.

 

왼쪽 벽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사진은 김구 선생님과 이동녕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곳은 1920년대 상해 주민들이 생활상을 보여주는 주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이건 침대고

 

[음성 자막]

이 사진은 1921년을 전후에서 찍은 사진인데 부인 최준례 여사와 큰아들과 함께 찍은 것입니다. 1924년에 한 살짜리 작은 아들 김씨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님은 일제의 감시 때문에 분명하기 어려워 아내의 임종마저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큰아들 김인도 1945년에 중경에서 폐병으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집무실입니다. 여기는 안창호 선생님과 이동녕 선생님의 친필 휴보가려 있습니다. 하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명이라는 그는 선생님이 관공에 대한 열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의 관심과 일평하여 결국 한방 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을 강제로 변탄했습니다.

 

왼쪽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중국 경북 지역 상회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각각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보다 더 강력하고 조직적으로 동기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각지에 흩어진 임시 정부는 1919년 9월 여러 여건이 유리한 상에서 단일 정부이다. 한민적의 대표 기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1919년부터 1932년까지 상회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일제의 안벽으로 여러번 이사해 옮겨 다닌 끝에 이곳 마당로 306통 4호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인물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은 초기 요인들입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안창호 선생님, 신니키 선생님, 현순 선생님이십니다.

상해에 한국인이 증가하면서 한인 이의 교육과 민족의 형상을 위해 인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사진은 인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의 사진입니다. 

신문과 잡지 등 매체를 통해 일제 침략 폭행을 밝히고 국제사회의 한민적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각종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임시 편차 위원회를 설립하고 독립 신문과 일제의 부당성을 알리는 한국 정부른, 자유한국 등을 발행했습니다. 1921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했습니다.

 

이 사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프랑스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한

 

[이재명 대통령]

하나의 건물인데 그중에 한 칸을 썼던 거예요.

 

[음성 자막]

 

1932년 1월 한인 애국단은 이봉상원 일본 도쿄에서 이왕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32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즉산의 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났고 그 후에도 아들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맹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날리고 나의 무덤 앞에 한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는 유원을 남기셨습니다.

 

폭탄을 던진 순간의 사진입니다. 윤의사가 체포를 당해 순국 하셨을 때의 나이는 25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청산리 전투전네 참부 대원들이시고요. 청산이 대첩에 참전하셨던 분들이십니다.

 

 

이봉상 윤봉길러의사의 의거 일제의 탄압은 거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상해에서 13년 투쟁을 중단하고 황주, 가금, 증가, 장사, 광조, 유도, 기감 등등의 중국 지대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1940년의 중심 중경에 도착했습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의 전면적인 발발로 중국과 한국의 항일 투쟁은 연대하게 되고 중국 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임시 정부의 군사 활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40년

김구 선생님은 임시정부를 개표해 중국 정부의 중국 땅에서 한국 광복군을 설립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음성 자막]

1천에서 2천명

 

[이재명 대통령]

옆에 빈칸 들을 조금 더 확보를 해가지고 기념품도 좀 팔고 그래야겠는데요

 

[음성 자막]

대통령님의 요구에 따른 조정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아 감사합니다 우리가 비용을 분담해도 되고

 

[음성 자막]

네. 나중에 한국 기업들이 여기에 진출해서

회의도 하고 상부하고 그런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100년,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이 역사적 시기에 상하이 청사를 방문하게 돼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는 중국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 사적지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 있을 만큼 중국은 우리 독립운동의 주 무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곳 상해는 백범 김구 선생께서 백범일지 집필을 시작한 곳이자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 의거를 거행한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마당루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 혹독한 탄압을 피해 여러 차례 거처를 옮긴 끝에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약 6년 간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우리 선열들은 이곳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키고, 민주공화국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향한 신념 하나로 버텨냈던 그 시간들이 바로 이곳에 고스란히 기록돼 남아 있습니다.

 

이 상하이 청사는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지난 1993년 성공적으로 복원 됐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3년 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청사를 지켜주신 중국 정부에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는 김구 선생의 은신처 마련에 도움을 주신 저보성 선생, 그리고 광복군 대원들의 호송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신 소경화 선생의 후손 여러분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국적과 민족을 넘어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주신 모든 분께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백년 전 이곳, 마당루에서 켜진 독립의 불빛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됐습니다.

 

우리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닌 선진 민주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임시정부가 천명한 민주공화제의 이념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며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 선생의 간절한 이 염원 또한 현실이 돼 가고 있습니다.

K-팝부터 K-콘텐츠, K-푸드, K-뷰티까지 대한민국의 문화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우리 선열들의 그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외순방을 다니며 보훈이 외교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존중할 때 국가 간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번 북경 방문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가 오늘날 한중 우호 협력의 근간이 되었음을 강조하며,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중국 내 사적지 보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시진핑 주석께 요청드렸습니다. 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이 곧 미래를 함께 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해외에 계신 독립유공자의 유해 발굴과 봉환 그리고 사적지의 체계적 관리와 보전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백년 전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고, 한중 양국의 우호와 협력을 다지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해 주신 천징 상무위원회 부주임님, 쉬즈 황푸구 부구청장님 그리고 독립유공자 후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립과 해방을 향한 중국과 우리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이 치열한 투쟁은 역사에 길이 남아 양국 유대와 연대에 큰 뿌리가 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오늘의 이 자리가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제가 오늘 김구 선생의 증손자죠, 손자신가. 증손자. 김용만 국회의원을 일부러 오라고 불렀는데, 부주임님 말씀이 끝나면 아주 간단한 소회 말씀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독립유공자 김택영선생의 후손 김계생]

존경하는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님, 상하이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의 천징 부주임님, 고향에서 오신 한국 친구 여러분,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념행사를 개최하게 됐습니다. 백년 전 이곳은 한국 임시정부 상해 소재지였고, 올해는 김구선생 탄생 100주년이자 세계 반파시스트 및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입니다. 이런 시점에 이 자리에 서게 되니 제 마음이 매우 벅차고 많은 생각이 듭니다.

 

포화가 난무했던 전쟁의 시대에 우리의 선배들이 민족 해방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선혈과 생명으로 조국 광복의 길을 만들었기에 우리가 평화의 시대에 살게 됐습니다. 선배들의 확고한 이상과 신념, 강인한 투쟁 정신, 그리고 찬란한 공적은 역사의 기념비에 깊이 새겨져 후손들이 대대손손 이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중한 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양국 국민의 우의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중국은 과거 우리의 선대들이 생활하며 전투를 치렀던 곳이고, 상하이시는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왔던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후손이 태어나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점이 오늘날 더욱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고, 중국은 그 후손들의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선대들이 걸어왔던 길을 잊지 않았고, 우리의 뿌리가 고향, 한국에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생활해 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역대 한국 정부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한국 여러 민간단체 및 우호 인사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지원금 지급, 각종 활동 초청, 언론 인터뷰 통해 우리는 고향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이재명 대통령께서 직접 독립운동유공자 후손들을 만나주신 것 매우 영광이자 자랑입니다. 저와 우리 가족, 유공자 후손들을 대표해 이재명 대통령께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을 보내준 한국 친구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립운동유공자 후손인 우리는 과거를 계승하여 미래를 열어나가는 시대적 책임을 짊어지고, 평화를 사랑하고, 현재를 사랑하며 선대들의 영광스러운 전통과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중한 양국의 경제 발전, 문화 교류 촉진에 힘을 보태면서 양국 국민의 전통 우의 심화를 위해 기여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용만 의원]

안녕하십니까.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증손자 김용만이라고 합니다. 먼저 이렇게 발언 기회를 주신 대통령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대통령님 말씀에서 주셨던 것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시작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백범 김구의 아들, 저에게는 할아버지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께서는 중국 하이옌이라는 곳을 96년에 방문했을 때 이런 글 남깁니다. ‘한중우의음수사원’. 음수사원이라고 하면 한잔의 물을 마실 때도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물을 마실 때 물 근원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의 시작을 생각할 때 항상 중국이 그 곁을 지켰다는 걸 기억하자는 의미입니다.

 

이 똑같은 말씀을 20년이 지난 2016년에 시진핑 주석께서 한국에 국빈 방문하셨을 때 인용하시면서 한국과 중국 관계를 더 우의를 다지자 맥락에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한국과 중국 관계가 일부 소원하게 아쉽게 유지가 됐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이재명 대통령님의 중국 방문으로 하여금 소원했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고, 다시 원만한 우의가 돋보이는 관계로서 회복을 시작한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찹니다.

 

다시 한번 회복된 한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안정적 평화 통해서 각국이 국익 추구하고 번영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우 히어로역사연구회 대표]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런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또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화면 자막]

대한민국이 시작되는 이곳

대한민국이 꼭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