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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역사

청와대가 있는 자리

청와대 청와대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서울시의 주변인 북악산과 북한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의 북쪽에 있습니다.

청와대의 주소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에 '광화문 1번지'로
정해졌었는데,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부터 일본식 주소가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세종로 1번지'가 되었습니다.

고려때의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

태조 이성계 청와대가 있는 세종로 1번지 부근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이궁이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 곳을 삼경으로 삼았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두고
남경으로 삼았습니다. 남경이란 '남쪽의 서울' 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숙종 이후 고려 예종, 인종 시대까지 계속 발전했던 이곳 이궁자리는 충렬왕 시절부터는
더 이상 화려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이 시작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 이성계는1394년 새로운 서울을 세우기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라는 특별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을 보내 궁궐터를 찾아보게 했는데 고려 숙종 때의 이궁 자리는 너무 좁아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려우므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 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이지요.
태조는 그 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고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궁이 바로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의 후원터

경복궁의 후원터 경복궁이 완성된 뒤 세종 8년인 14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의 후원(뒤뜰)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때 후원에는 서현정, 연무장, 과거 시험장이 만들어졌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이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경복궁과 그 후원인 지금의 청와대 근처는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인 1865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 당시에 함께 건축되어 후세까지도 이름을 남기게 된 경무대도 지어졌는데,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으로서의 기능을 이어갔습니다.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경복궁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경무대는 제 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라는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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